수평선 너머로 붉고 주황빛 노을이 장엄하게 퍼져나가며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한낮의 열기는 가시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젖은 모래 냄새와 섞여 뺨을 스치고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렸다. 활기찼던 해변은 이제 한산해져, 드문드문 남은 연인들이나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실루엣만이 멀리 보일 뿐이었다. 로고스는 제복 소매를 가볍게 걷어 올린 채, 박사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해변을 거닐었다. 그의 붉은 눈은 지는 해의 마지막 빛줄기가 반사되는 파도를 응시하다가, 문득 옆에서 함께 걷는 작은 그림자를 향했다. 며칠 전 의료실 침대에 누워 있던 창백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이런 풍경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임무 중이 아니라면, 잠시 앉아서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먼저 침묵을 깬 건 로고스였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파도가 닿지 않는 마른 모래밭 어딘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그는 무리하지 말라는 듯한 시선을 슬쩍 보냈다. 그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며,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새겨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옆에 있던 작은 그림자가 갑작스레 움직였다. 그의 시야 끝에서 무언가 툭, 하고 모래 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신발이었다. 그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맨발의 작은 인영이 저만치 앞서 파도가 밀려드는 물가로 달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행동에 로고스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하얀 포말이 발목을 적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장구를 치는 듯한 뒷모습을 가만히 쫓았다. 지는 해를 등진 실루엣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듯한 해방감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신발 한 켤레를 내려다보았다. 작고 낡은 신발이었다. 그는 말없이 다가가 허리를 숙여 신발을 주워들었다. 모래를 가볍게 털어낸 그의 손길은 무심한 듯 보였지만, 그 행동에는 어떤 습관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정말이지."
나지막한 혼잣말이 바닷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질책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체념에 가까운 어조였다. 그는 신발을 한 손에 들고, 다시 물가의 인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던 이가 저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안도감보다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염려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물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바닷물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그리고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멈춰야 했다. 그의 발걸음은 단호했지만, 시선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저 자유로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 그 사이 파도 소리가 그의 귓가에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녀가 남긴 작은 발자국들을 따라 로고스는 천천히 물가로 다가섰다. 모래와 물이 뒤섞인 감촉이 군화 아래로 느껴졌다. 거리가 좁혀졌을 때,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였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잠시 그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망설임 없이 뻗어온 손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미처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강한 힘에 이끌려, 로고스는 속수무책으로 균형을 잃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순식간에 제복을 흠뻑 적시며 온몸으로 스며드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잠시 물보라로 흐려졌다.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젖어버린 옷의 불쾌함과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눈앞의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눈 앞에 자신을 보며 환하게,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밝게 웃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평소의 불안이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기쁨만이 어려 있는 미소. 때마침 수평선 너머로 마지막 빛을 쏟아내는 노을이 그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로고스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거나, 혹은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젖은 옷 위로 불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웃음은 여전히 그의 눈앞에 있었지만, 로고스의 머릿속은 빠르게 현실적인 문제들로 채워졌다. 흠뻑 젖은 몸, 급격히 식어가는 기온, 그리고 며칠 전까지 의료실 신세를 졌던 그녀의 건강 상태.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전히 물속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만 나오는 것이 좋겠다. 이러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야."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차분함을 되찾았지만, 내민 손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노을빛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고,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기를 기다리며, 젖은 제복 소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내민 손을 잡는 감촉은 부드러웠지만, 이어지는 움직임은 불안정했다. 간신히 일어서는가 싶던 몸이 다시 휘청이며 주저앉으려는 듯 위태롭게 기우는 것을 보며, 로고스는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어 지탱했다. 방금 전의 짧은 해방감이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그녀의 몸은 여전히 완전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는 작게 혀를 찼다. 역시 무리였군······
그는 잡고 있던 손을 놓는 대신, 그녀의 등과 다리 아래로 팔을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저항은 없었다. 젖은 옷과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 때문에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그의 팔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그 무게를 받아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그녀의 신발을 쥔 채, 조심스럽지만 망설임 없는 동작으로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돌아가야 한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는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 않고, 파도가 닿지 않는 마른 모래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젖은 군화가 모래를 파고들며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떨림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의 시선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해변 입구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노을의 마지막 잔광이 그의 젖은 머리카락과 제복 위로 희미하게 부서져 내렸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등 뒤로 남겨졌다.

시에스타 서머데이